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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적는 풍경들
예산은 늘었지만, 책임은 사라진 행정의 일상 본문

예산은 해마다 늘어난다. 중앙정부든, 각 부처든, 지자체든 숫자는 커진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국민이 체감하는 행정의 신뢰는 함께 자라지 않는다. 이 간극은 늘 “일부의 일탈”이라는 말로 덮인다.
하지만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면, 그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공무원의 공식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명확하다.
그런데 그 시간은 행정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 흐려진다.
근무 중 개인 쇼핑, 사적 용무, 외근과 출장이라는 이름의 공백. 무엇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확인되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 구조에서는 근무시간 자체가 의미를 잃는다.
관용차 역시 마찬가지다.
원칙은 공적 업무에 한한 사용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출퇴근, 주말, 개인 이동까지 자연스럽게 포함된다. 기록은 남지만, 검증은 내부에서만 이뤄진다.
적발돼도 대부분 경고나 주의로 끝난다.
관용차는 어느새 공공자산이 아니라, 직급이 높아질수록 따라오는 편의처럼 인식된다.
해외연수, 판공비, 각종 수당도 같은 궤적을 그린다. 연수는 성과를 묻지 않는다.
판공비는 공개되지만 따지지 않는다.
수당은 관행 속에서 자동 지급된다. 내부 승인, 내부 점검, 내부 종결. 이 삼박자가 굳어지면 예산은 목적을 잃고, 책임은 증발한다.
국민이 느끼는 불공정은 여기서 발생한다.
민간은 다르다.
출퇴근 기록, 성과 평가, 위치 확인, 결과 책임. 하루 쉬면 수입이 줄고, 규정을 어기면 바로 불이익이 온다.
같은 시간, 같은 세금을 내며 살아가는데 적용되는 기준은 다르다.
그래서 시민은 점점 이렇게 느낀다.
공무원은 같은 나라에 있지만, 다른 규칙 속에 있다고.
이 문제를 윤리나 도덕의 문제로만 돌리는 순간, 해결은 불가능해진다.
선한 사람도, 처음엔 긴장하던 사람도, 책임이 없는 구조 속에서는 결국 느슨해진다.
공적 자원을 사적으로 사용해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설계된 시스템이 문제의 핵심이다.
필요한 것은 거창한 개혁이 아니다.
관용차 출퇴근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는 공개하면 된다.
외근과 출장은 기록으로 남기고, 자동 수당 지급을 차단하면 된다.
감사는 내부에서 끝내지 말고 외부와 시민을 참여시키면 된다.
반복되면 실제 인사 불이익이 따르게 하면 된다.
책임이 생기면 행동은 바뀐다. 조직은 늘 그렇게 움직여왔다.
예산이 부족해서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다.
예산을 어떻게 써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구조가 문제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어느 부처든 어느 지자체든 같은 장면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그리고 그 비용은 언제나 국민이 지불하게 된다.
문제는 몇 명의 일탈이 아니다.
문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구조다.
공적 자원을 사적으로 써도, 근무시간이 사라져도, 관용차가 개인 발이 되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 바뀌지 않는다. 예산은 늘고, 관리자는 늘고, 시스템은 그대로다.
이 나라의 행정이 신뢰를 잃는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돈이 없어서도, 인력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책임을 묻지 않기 때문이다.
책임이 없는 권한은 특권이 되고,
특권은 관행이 되며,
관행은 결국 국민의 몫으로 청구된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예산은 누구를 위해 쓰이고 있는가.
그리고 이 시간은, 이 차는, 이 제도는 정말 공적인가.
지금 이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다음 해 예산이 얼마가 되든,
행정은 또다시 같은 얼굴로 시민 앞에 서게 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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